대구/경북

조형사진작가 정재규, 대구미술관 개인전‘빛의 숨쉬기’

대구출신 재불작가 정재규(1949년생), 사진, 설치작품 53점 소개

작성일 : 2020-07-08 17:02 기자 : 이민수

정재규, 빛의 숨쉬기
 

 

대구미술관(관장 최은주)77()부터 1018()까지 재불 작가 정재규(1949년 대구출생)의 개인전 빛의 숨쉬기4, 5전시실에서 선보인다.

 

정재규는 사진의 평면성을 뛰어넘은 조형사진으로 국제적 관심을 받고 있다. 7일부터 선보이는 대구미술관 전시에서 작가는 30여 년 간 매진한 조형사진(Plastic Photography)의 세계를 한자리에서 보여준다.

 

정 작가는 사진의 재현성을 해체하기 위해 하나 또는 여러 이미지를 가늘고 길게 절단해 마치 베틀을 짜듯 가로, 세로로 교차해 배열한다. 이 과정에서 전혀 다른 이미지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3차원적 착시가 나타나기도 한다.

 

자르기, 붙이기뿐만 아니라 정재규는 올짜기, 심지어 서예 기법까지 활용해 입체적 이미지를 만든다. 작가는 사진의 정밀한 묘사력에 의존하면서도 대상의 기록, 복제를 위한 사진이 아니라 조형미술을 목적으로 제작된 사진을 스스로 조형사진이라 명명했다.

 

사진, 그림 등 장르를 선 긋듯 나눠버리는 건 예술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에 한계를 부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 회화를 전공했지만 사진에 관심을 가졌고, 1977년 제10회 파리 비엔날레에사진 분야로 전시에 참여했습니다. 기계적으로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닌, 기하학적인 조형 언어로 사진에 접근하는 데 매력을 느꼈습니다. 또 이런 예술이 특정 누군가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뒤샹이 말한 흔한 기성품을 편하게 이용하듯 누구나 접근 용이한 것으로 다가가길 바랐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생트 빅투아르산 후경(The Rear View of the Mountain Saint-Victoire)’, ‘아치 아틀리에(The Arches Ateliers)’, ‘HM53(앙리 마티스Henri Matissse)’, ‘만 레이(Man Ray)’, ‘경주시리즈 등 크게 5개 시리즈를 선보인다.

 

이 시리즈들은 정재규 조형사진의 시작부터 현재를 아우르는 대표작들로 조형사진을 구축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작가의 창작과정과 예술세계를 충분히 느껴볼 수 있다.

 

생트 빅투아르 산 후경 시리즈는 1989년 생트 빅투아르 산을 여행하며 촬영한 사진을 모티프로 한다. 사진 이미지를 잘라내어 상하 방향을 바꾸어 같은 자리에 배치한 생트 빅투아르 산 후경은 조형사진의 시작이 된 작품이다.

 

아치 아틀리에(The Arches Ateliers)는 프랑스 파리의 이시--물리노(Issy-les Moulineaux)에 위치한 작업실의 이름이다. 정재규는 1991년 재불 작가들의 공동 아틀리에 소나무 협회’ 4인 창립 멤버였고, 10년간 그 곳에서 작업했다.

 

2002년 소나무 아틀리에가 폐쇄되고 아치 아틀리에로 이주한 후 작가는 처음으로 올짜기 작업을 시작했다. 2개의 작품이 하나로 구성되어 있는 아치 아틀리에는 올짜기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1cm의 작은 조각을 누런 포장지로 올짜는 과정은 화면 속 시공간의 이미지뿐만 아니라 작가의 사적인 기억과 역사적 사건이 개입된 시간의 올짜기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정재규는 만 레이(Man Ray)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폴 세잔(Paul Cezanne) 등 현대미술사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온 작가들의 작품을 조형 사진화하는 작업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2018년 방문한 만 레이의 묘지사진을 주제로 한 작품을 선보이는데 운필, 올짜기, 자르기 기법 등이 어우러져 작가의 조형사진적 감각을 풍성하게 느낄 수 있다. 작품은 모빌(mobile)형태로도 제작되어 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는 새로운 이미지와 지각을 경험할 수 있다.

 

정재규에게 경주는 각별한 도시다. 1994년 경주를 방문했을 때 국립경주박물관 뜰에서 머리가 없는 불상 약 50여 구가 배치되어있는 모습을 접하게 됐다.

 

당시 작가는 경주에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 셔터 소리와 함께 불상의 참수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바로 그때 과거의 한순간과 현재의 순간이 겹쳐지는 인상을 받았죠고요한 장소에서 여러 찰나가 교차하던 순간, 작가는 사진에 담기는 이미지가 프레임을 넘어 새로운 시간으로 들어서게 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작가는 김유신묘, 석굴암, 다보탑 등에서 한국인의 보편적 조형능력과 잠재력을 발견해 경주를 주된 작업 대상으로 삼았다.

 

특히 이번 전시를 통해 공개되는 신작 5점 역시 불국사, 석굴암 본존불, 경주시내 반월성 앞 연못의 연꽃 등 경주를 모티브로 제작했다. 올 짜진 사진이미지를 기하학적 형태로 배치해 리듬감과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경주 김유신묘 12지신상은 김유신장군 봉분 주변의 호석을 조형사진화한 작품이다. 각 동물의 특징을 올짜기와 운필로 표현하고 있다. 운필작업은 2001년경 중국의 화가 팔대산인(Bada Shanren, 八大山人1626~1705)의 영향으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정재규의 운필은 마치 사진을 촬영하듯 카메라 셔터가 눌러지는 짧은 순간에 붓을 휘두른다는 특징이 있어 손과 붓의 풍부한 몸짓을 느낄 수 있다.

 

1949년 대구에서 출생한 정재규는 1974년 서울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1977년 제10회 파리비엔날레 참가를 계기로 1978년 도불했다. 도불 후 파리1대학에서 미술이론을 수학했으나 사진의 힘에 매력을 느껴 90년대 사진을 통해 현실을 재현하기보다 사진을 통해 사진을 넘어서는 작업 즉, 조형사진을 30여 년간 이어오고 있다.

 

전시를 기획한 이동민 대구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는 작가의 고향 대구에서 가지는 최대 규모의 개인전으로 30여 년간 우직하게 이어온 작가의 예술정신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전시다조형사진을 통해 빛의 지각을 경험하며 보이는 것 너머의 시각적 근원을 느껴보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인쇄 스크랩 목록

대구/경북 이전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