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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편찬원, 등재학술지‘서울과 역사’ 제102호 발간

근대 서울의 모습부터 현대 잠실일대의 개발까지 서울역사를 다룬 연구 총 5편 수록

작성일 : 2019-07-18 15:31 기자 : 이민수

서울역사편찬원(원장 이상배)은 한국연구재단 등재학술지서울과 역사102호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서울과 역사102호에는 총 5편의 논문과 자료소개 1편의 글이 게재되었다.

 

근대시기부터 현대 서울도시개발까지 근현대 서울 역사를 주재로 한 연구이다.

 

게재 논문은 퍼시발 로웰의 서울 사진에 대한 고찰’(정영진), ‘101인 사건공판에 대한 피고인의 대응(김국화),6.25전쟁기 북한의 서울시민 전출사업 연구(김선호), 한국전쟁기 서울의 학생과 학교(김상훈), 잠실지구 개발사업과 송파고분군의 문화재 경관 변화(정치영)이다.

 

서울역사 관련 자료를 소개한 글은 갑오개혁 이후 한성부 치안상태 일면을 볼 수 있는 자료-‘남서일보’‘중서일보’‘본청일보’‘동서일보’(장경호)이다.

 

정영진(한국외대 강사)은 퍼시발 로웰의 서울 사진에 대한 고찰을 통해, 로웰이 서울에서 촬영한 사진의 불분명한 위치와 대상을 비정했다.

미국인 퍼시발 로웰은 최초로 사진기를 가지고 1883년에 조선에 정식으로 입국한 외국인으로 조선 관련 사진 80여 장을 남겼다.

 

그의 사진들은 한국의 사진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가치를 지니며, 서울한양도성 내외에 위치한 다양한 장소의 풍경과 인물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진이 촬영된 장소와 대상이 불분명했다.

 

정영진은 로웰의 서울 사진 19장의 촬영위치와 대상을 비정했다.

 

그 결과 마포에서 바라본 여의도와 이촌동의 방향 그리고 공덕동과 아현동의 방향의 옛 모습은 물론 대원군이 머물렀던 아소정의 전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밖에 경복궁후원 수목의 원형과 화계사 주변의 옛 모습 그리고 로웰이 거처했던 외아문 관저의 위치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김국화(성균관대 박사수료)‘101인 사건공판에 대한 피고인의 대응을 통해, 1927~1928년 식민지 서울에서 있었던 공판 과정을 밀도 있게 살펴보았다.

 

101인 사건은 1925년과 1926년에 발생한 조선공산당 1~2차 검거 사건 재판이다.

 

1927~1928년 이 사건의 공판이 서울에서 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피고인들은 고문을 가한 종로경찰서 경관을 고소하고 불공정한 재판을 이유로 재판장 기피 신청을 하며 당시 식민지 조선에서 큰 이목을 끌었다.

 

그 밖에도 6.25전쟁 시기의 서울 역사를 볼 수 있는 연구가 함께 실려있다.

 

김선호(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연구조교수)‘6.25전쟁기 북한의 서울시민 전출사업 연구와 김상훈(서강대 박사)한국전쟁기 서울의 학생과 학교이다.

 

김선호는 19507~9월 초순까지 약 2개월간 추진되었던 서울시민 전출사업에 주목했다.

 

서울시민 전출은 북한정부가 전시생산체계의 노동력 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민을 북한지역으로 이주시킨 사업이었다.

 

서울 경기에서 약 3,000명이 전출된 것으로 추정되며, 기술자 기능자의 비율이 높았다.

 

또 가족단위로 이주한 사례도 많았다.

 

하지만 북한으로 이주한 그들은 북한에서 인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대한민국정부에 대한 잠재적 지지자이자 이질적인 존재로 인식되었다.

 

한편 김상훈은 6.25전쟁 시기의 학생들에 주목했다.

 

피난을 떠나지 못하고 점령지 서울에 남겨진 학생들은 북한의 의용군 모집에 앞장서야 했으며, 서울 수복 후에는 부역자가 되거나 부역자를 신고해야 했다.

 

전시기간에 각종 궐기대회와 시가행진에 참가하고, 군부대를 찾아다니며 위문활동을 했던 그들의 모습을 통해 6.25전쟁기 서울의 모습을 조명했다.

 

한편 1960~1970년대 서울의 경관변화의 역사를 다룬 연구도 있다.

 

정치영(한성백제박물관 학예연구사)잠실지구 개발사업과 송파고분군의 문화재 경관 변화를 통해, 잠실개발과정에서 빚어진 송파고분군의 변모 과정과 그 경위를 파악했다.

 

서울 송파고분군은 석촌동고분군, 가락동고분군, 방이동고분군을 통칭하는 것으로, 풍납토성 및 몽촌토성과 함께 대표적인 유적이다.

 

1910년대 기록에 의하면 이 일대에는 수많은 고분이 분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970년대 잠실지구 토지구획 정리사업 등으로 이곳의 경관이 변화했고, 오늘날 도심 속 두 개의 섬과 같은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

 

당시 관련 공문서에서는 국토개발과 문화재 보존을 둘러싼 갈등과 해결과정은 물론 1970년대의 시대적 한계도 함께 볼 수 있다.

 

이 책은 서울시청 시민청 지하1서울책방에서 구매(10,000)할 수 있으며, 서울역사편찬원 홈페이지(hitory.seoul.go.kr)에서 개별 논문을 다운로드 받거나 열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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