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ㆍ기고

[기고]동서화합의 상징 라제통문을 아십니까?

작성일 : 2016-08-11 01:27 기자 : 이민수

김관덕 법무법인 자유 송무실장

전라북도 북동부에 위치한 무주군은 충남 금산군, 충북 영동군, 경남 거창군, 경북 김천시와 접하고 있다. 5개의 도와 접경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백과사전을 살펴보면 무주 설천면의 라제통문(羅濟通門)은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가 국경을 이루던 곳으로 설천면의 두길리 신두(新斗)마을과 소천리 이남(伊南)마을의 경계를 이루는 석견산(石絹山)에 위치한 바위굴이다. 높이 3m, 길이 10m에 이른다고 기록하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석견산 바위 능선을 경계로 동쪽의 무풍은 신라 땅이었고, 서쪽의 설천·적상면과 무주읍 등은 백제 땅이었고, 삼국시대부터 고려에 이르기까지 풍속과 문물이 판이한 지역이었던 만큼 지금도 언어와 풍습 등 특색을 간직하고 있어 설천장날에 가보면 사투리만으로 무주와 무풍 사람을 가려낼 수 있다는 것이다.

 

백과사전에서는 작은 바위산인 석견산 능선으로는 본래 설천과 무풍을 오가던 사람들이 넘어 다니던 고갯길이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 때 무주에서 김천과 거창으로 이어지는 신작로를 개설하면서 우마차가 통행할 수 있도록 굴을 뚫었다고 한다.

 

옛날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다는 유래에서 라제동문(羅濟洞門), 혹은 라제통문(羅濟通門)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또한 삼국의 통일전쟁 무렵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드나들었다 하여 ‘통일문'이라고도 불린다는 것이다.

 

나는 가족들과 함께 여름휴가를 빙자해 평소 궁금해 하던 무주군 일대를 다녀왔다. 그곳에 도착한 첫날부터 아내와 아이들의 관심사인 등골까지 시원하게 해주는 구천동 계곡이나 덕유산과는 달리 나의 관심은 처음부터 따로 정해져 있었다.

 

무주 구천동 33경 중 제1경이라는 ‘라제통문(羅濟通門)이 바로 그것이었다. 내가 라제통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순위 때문만은 결코 아니었다.

 

어린 시절 고향인 전라북도 고창에서 성장하면서 교과서에 실린 한 장의 흑백 사진을 뇌리에 새기면서, 그때 이미 “언젠가는 꼭 찾아가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그로부터 너무나 오랜 시간이 지난지라 그 약속마저 망각의 덮개에 대부분이 가려져 가던 중, 휴가의 첫 목적지로 무주를 정해 전격 방문을 감행했다. 거기다가 아이들에게도 현장감 있는 역사 공부를 시켜줘야겠다는 의무감이 꿈틀거린 것도 한 몫을 한 것 같다.

 

라제통문(羅濟通門)은 신라(新羅)의 라(羅)와 백제(百濟)의 제(濟)에서 따온 것이다. 이것은 신라에서 백제 또는 백제에서 신라로 통하는 문이었던 것이다.

 

삼국시대에는 이 문을 기준으로 서쪽은 백제 동쪽은 신라 땅이었다는 이야기다. 나는 이 역사적 사실에만 경도(傾倒)되어, 막연히 라제통문을 기준으로 현재는 전라북도와 경상북도가 경계를 이루고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해 왔다.

 

그러나 현지에 가보니 서쪽은 무주군 설천면이고, 동쪽은 무주군 무풍면이다. 그것도 약 4킬로미터나 더 내륙으로 들어가야만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과 경계를 이루게 된다. 고려시대 초기까지는 라제통문을 기준으로 서쪽지역은 백제 문화권 동쪽은 신라 문화권에 속해오다가, 1391년(공양왕 3년)에 두 지역을 병합하여 오늘날 무주군의 틀이 마련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여파는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쳐 동일한 군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설천면 주민들은 전라도와 충청도 말이 섞인 말씨를 무풍면 주민들은 경상도 말씨를 쓰고 있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동서화합의 상징으로 화개장터를 떠올린다. 하지만 라제통문이야말로 동서화합과 민족화합의 상징으로 삼아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관덕(법무법인 자유 송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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