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ㆍ기고

[칼럼] 선농단역사문화관의 문화재적 가치

대중의 발걸음이 선농단을 향하는 계기 마련 돼

작성일 : 2018-03-20 12:09 기자 : 이민수

선농단역사문화관장 김혜리

농경의 시작은 인류의 정주(定住)를 유발하여 문명의 태동을 이끌었다. 이를 고려할 때 인류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다고 전해지는 신농씨(농경신農耕神)와 후직씨(오곡신五穀神)는 야생에서의 위태로운 삶을 종식해 문명사회의 평온한 삶을 촉발한 농업 혁명(agricultural revolution)의 아이콘으로써, 동아시아 전역의 농경사회로부터의 숭배를 받았다.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전 근대 국가에 있어 일 년 농사의 풍흉은 백성의 생존을 좌우하고 국가의 경제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따라서 농경의 신에게 예의를 갖춰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것은 선농대제(先農大祭)는 농경국가의 지도자인 임금에게 있어 최대의 임무였다.

 

이는 임금의 제단인 선농단(先農壇)의 존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함께 농경신을 숭배해왔던 중국과 일본은 각각 문화대혁명과 메이지 유신의 역사적 격랑 속에서 그 전통이 소실되었다. 하지만 한국은 달랐다.

 

1년에 한 번 흥인지문 밖 선농단으로 향하는 왕의 행차는 백성과 왕이 어울릴 수 있는 기회였고, 임금은 이 기회를 통해 백성의 고된 삶을 위로하며 소통하였기에 역사적 실물로서 가치가 있다. 전통을 보존하고자 하는 선각자와 지역 주민이 각고의 노력으로 선농대제와 선농단을 지켜낸 것이다. 그 노력 끝에 선농단은 2001년 사적 제436호로 지정되어 영속적인 보존을 보장받게 되었다.

 

그리고, 2015년 선농단역사문화관의 개관과 함께, 문화재로서의 선농단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선농단 문화재를 보존하는 박물관이 개관하면서 선농대제와 선농단에 관련된 역사적 자료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선농단역사문화관은 선농단의 역사적 정보와 유물, 그리고 박물관 자료를 수집하고 그로부터 역사적 의의를 연구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또한, 수집된 유물과 자료로부터 전시물을 제작하고 각종 역사문화 콘텐츠를 개발해 활용함으로써 대중과 소통한다.

 

선농단 역사문화관의 개관을 통해 농경사회의 전통을 확산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옛 농경사회의 전통을 현재에까지 잇는 선농단역사문화관의 역할을 통해, 대중의 발걸음이 선농단을 향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