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ㆍ기고

[칼럼] 선농단의 과거 현재 미래

선농단의 가치와 선농단의 미래모습에 대한 정립이 필요

작성일 : 2018-07-14 15:24 기자 : 이민수

선농단역사문화관 김혜리 관장


조선시대의 제단 가운데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몇 안되는 역사유적 가운데 하나인 선농단은 그 일대가 과거에 비해 크게 변형되고 축소되었다. 선농단 본연의 가치를 고찰하고 형태를 고증하여 역사적 사실과 고고학적 성과를 검토하는 것은 선농단 제반의 역사를 이해하는 기회가 됨은 물론 미래세대에 문화유산(Heritage)의 보존, 활용 가치를 높이는데 의미가 있다.

 

오늘날 선농단(先農壇) 정비, 선농단역사문화관 조성은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지역사회가 중심이 되어 성공적으로 보전하기 위한 물리적 토대를 만든 일이며, 도시에 문화유산의 가치를 회복하는 일로써 그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선농단의 이해를 위해선 삼국, 고려, 조선, 구한말, 근대, 현대의 통시적 고찰과 동아시아 제단 조성에 관한 공시적 고찰이 필요하다.

 

과거, 농경사회에서 농경의례는 가장 주요한 의례로, 동아시아 사회에서 국왕은 이를 수행하는 주요 역할을 담당하였다. 국왕이 거주하는 수도는 이러한 의례의 중심장소로서 국가가 지향하는 이념에 따라 의례행위를 펼쳤다.

 

여러 의례의 장으로써 적전(籍田) 선농단은 수도 주변에 마련된 밭으로 신년에 의례를 통해 풍년을 기원하고 농업을 장려하며, 이곳에서 재배한 곡식을 백성들의 궁휼미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국왕이 친경을 통해 농삿일의 어려움을 함께하는 보편성을 획득하고 실행과정에서 문화적 갈등을 빚어내면서도 보편적 도덕성이라는 측면에서 유지, 강화되기도 하였다.

 

조선초까지도 적전은 종묘와 함께 친행(親行)되어야 할 의례로 꼽혔으나, 곧 그 위상에 변화가 생겼다. 적전 친경을 행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 의미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세종대 이후 적전은 농작물을 경작하여 종자를 보급하고 전품을 시험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권농의 다른 형식을 실천하는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적전 선농단이 10세기 고려 성종대 설치된 이래 어떠한 맥락속에서 유지되었는지, 조선 시기 역동성과 그 의미와, 수도 한성이 지닌 사상적 의미 등 그 이후 변화과정 및 그 특징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선농단의 고증을 통한 현재의 선농단의 진정성 및 완전성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지? 현재의 선농단이 가지는 가치는 무엇인지?

 

선농단의 미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

 

현시점에서의 선농단의 가치와 선농단의 미래모습에 대한 정립이 필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