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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행정 통합의 성패, '디지털 주권'에 달렸다

  • 어반전략컨설팅
  • 2026-02-03 07:2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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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구·경북, 광주·전남 등 전국 곳곳에서 ‘초광역 행정 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인구 소멸과 지방 소멸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생존을 위한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려는 고육책이다. 그러나 작금의 논의를 지켜보면 우려가 앞선다. 지자체장들은 통합 후의 청사진과 정치적 지분, 청사 위치 등 '외형적 결합'에만 매몰되어 있다. 정작 통합의 혈관이자 신경망인 '행정 데이터 거버넌스'에 대한 고민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행정 구역을 하나로 합치는 것은 지도 위의 선을 지우는 작업이지만, 행정 시스템을 합치는 것은 수십 년간 서로 다른 언어로 쓰인 '디지털 세계'를 충돌시키는 일이다. 준비 없는 통합은 축복이 아니라 ‘디지털 바벨탑’의 붕괴라는 재앙이 될 가능성이 크다.

본질적인 문제는 데이터의 불일치다. 현재 지자체별 행정 시스템은 평균 15년 이상 된 노후 장비와 파편화된 데이터베이스(DB)로 점철되어 있다. 복지 수급 자격, 지방세 과세 표준, 도시계획 데이터 등 핵심 행정 정보의 기준이 제각각이다. 이 상태로 통합이 강행된다면, 통합 첫날 주민들은 주소 변경조차 안 되는 행정 마비를 겪게 될 것이며, 이는 곧 지자체장을 향한 민원 폭탄과 정치적 리더십의 파산으로 이어질 것이다.

시장을 이기는 정부가 없듯, 기술적 흐름을 거스르는 행정은 필패한다. 이제는 '땅따먹기'식 통합에서 벗어나 '데이터 주권' 선점 전략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의 세 가지 전략적 접근을 제언한다.

첫째, '소버린 데이터 레이크(Sovereign Data Lake)'를 구축해야 한다. 무리하게 데이터를 물리적으로 이전하려다 보안 사고를 내기보다, 가상의 논리적 통합 레이어를 씌워 양 지자체의 데이터를 즉시 호환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 효율적이다. 민감한 개인정보는 지자체 자체 클라우드에 두되, 분석용 데이터만 AI가 학습하도록 하여 데이터 주권을 지키면서도 통합의 시너지를 내야 한다.

둘째, '행정 AI 에이전트'를 전면 배치해야 한다. 통합 초기에는 행정 절차 차이로 인한 단순 반복 업무가 폭증한다. 이를 공무원들이 일일이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2026년 시행될 'AI 기본법'의 기준을 선제적으로 충족하는 '고영향 AI' 시스템을 도입하여, 서류 작업과 조회 업무를 자동화해야 한다. 여기서 확보된 행정 인력은 통합 과정의 갈등 조정과 현장 민원 해결이라는 본연의 가치에 집중하게 해야 한다.

셋째, 고령층을 위한 '따뜻한 디지털'을 구현해야 한다. 통합 대상 지역인 전남이나 경북 등은 디지털 취약계층인 고령 인구 비중이 압도적이다. 복잡한 통합 앱 대신 음성만으로 민원을 처리하는 '초거대 AI 민원 비서'를 탑재해야 한다. 기술이 장벽이 아닌 복지가 될 때, 통합에 대한 주민들의 심리적 저항은 비로소 사라진다.

지방 통합은 거대한 장기 이식 수술과 같다. 피부(영토)만 꿰맨다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경(데이터)이 연결되고 혈액(시스템)이 돌아야 생명이 유지된다. 지금 당장 데이터 거버넌스 아키텍처 설계에 착수하지 않는 지자체는 통합 후 상대 지자체의 시스템에 억지로 데이터를 끼워 맞추는 ‘디지털 하청 업체’ 신세로 전락할 것이다.

준비된 자만이 미래를 주도한다. 서핑 선수가 파도의 높이에 압도되지 않고 그 흐름을 타야만 해안에 도달하듯, 지자체장들도 행정 통합이라는 거대한 파도 위에서 '디지털'이라는 보드를 제대로 점검해야 한다. 데이터 거버넌스가 없는 통합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과 다름없음을 명심해야 할 시점이다.

국창민 (어반전략컨설팅 대표·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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